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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

과정과 결과?

저는 이 글을 쓰기까지 벌써 20일째 아침마다 명상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초보라서 그런지 명상을 하다보면 머릿속이 고요해지기는 커녕 온갖 잡념들이 파도가 넘실거리듯 툭 튀어올랐다가 내려 앉기를 반복하게 돼요. 나름 꾸준히 했는데도 오히려 마음속이 소란해진것 같아서 씁쓸함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저는 마음이 고요해져야 명상의 의미가 있다고 믿고 있었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떠오른 잡념들이 나 스스로에겐 중요하기 때문에 툭툭 계속 튀어나오는게 아닐까?” 그렇다면 남들은 몰라도 나라도 나의 내면의 소리를 들어줘야 한다고 말입니다. 나조차도 나의 마음의 소리를 들어주지 않는데, 남들은 거들떠도 안볼거 같더라구요.

그렇게 저 스스로와 타협을 하고 나니 제 안에서 고요해져야 한다는 마음과의 갈등은 줄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명상을 하면서 들었던 잡념들이 글감으로도 쓸수 있겠다는 아이디어도 번쩍 떠올랐어요. 그 때 떠오른 생각이 오늘 글의 주제인 과정과 결과에 대해서 입니다.

잊혀지는 존재

제 주위엔 사람들의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필요 이상으로 타인의 이목을 신경쓰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왜 저렇게까지 타인 때문에 에너지를 쓰는걸까?” 라고 의문이 들더군요. 제 경험에 의하면 사람들은 생각보다 다른 사람이 했던말들을(특히 스몰 토크) 한달 이상을 기억 못할 뿐더러 더 짧게는 하루면 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아 그런말들을 했었어?” 라고 하거나, 제가 답했던 것을 또 물어보는 일들이 허다 하죠. 심지어 옷차림도 마찬가지에요. 저는 지금 어제 만났던 사람들이 무슨 옷을 입었는지 떠올려 보려고 했는데 전혀 기억이 안나요(이건 저만 그런걸수도…)

사실 저도 장소와 상황에 따라서는 신경쓰기도 합니다. 그 정도가 심해지면 저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해서 속으로 “어차피 나와 마찬가지로, 내 앞에 있는 이 사람들은 100년 후에는 전부 사라질 사람들이다. 아니, 어쩌면 10년만 지나도 서로의 기억에서 잊혀질 거다”라고 되뇌입니다. 이건 저에겐 정말 효과 있는 말이었어요.

허무주의

그런데 문득, “그럼 100년후에는 반드시 사라질거면 지금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결과를 내려고 하는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지? 또 사람들을 사귈 필요도 없잖아?” 하는 허무주의적인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이런 생각이 싫었습니다. 저의 내면속의 부정적인 생각을 논파하기 위해서 이것보다 좀 더 접근하기 쉬운 주제가 필요했습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런 생각은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는 주장과도 맞닿았어요.

저는 다시 명상을 하면서 더 깊게 파고들었습니다. 그럼 나는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한 사람인가? 결과를 내기 전까지의 과정은 내 삶이 아닌가? 그런데 어떤 결과를 내어도 결국엔 사라질 거라면 의미가 있을까? 만약 내가 만든 결과물이 영원히 남는다면 의미가 있을까? 내가 사라지고 내 결과물이 영원히 남는게 의미가 있을까? 내 인생의 끝은 결국은 죽음일텐데 지금 밥은 왜 먹고 있나? 결국은 죽는데 왜 살아야 하나?

삶이라는 특권

점점 생각을 극단적으로 끌고 가 보니, 그 끝에는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였고, 죽음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저는 미래를 준비하고, 밥을 먹고, 책을 읽고, 사람들도 만나고, 이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지금의 저에게는 이런 것들이 즐거운 일이면서 한 때는 진지하고, 지쳐도 쉬었다가 다시 해내고 싶은 일입니다. 그리고 제가 하려하는 이 모든 것들은 내가 스스로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알기 위한 여정입니다.

삶이라는 것은 엄청난 기적이라는 글을 언젠가 읽은적이 있습니다. 사실 이 우주는 생명이 없는게 더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특히 지구와 같은 행성에서 생명체들이 존재한다는게 천문학적으로 부자연스러운 것이라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결국 내가 사라진다 하더라도 살면서 느끼는 즐거움, 행복, 사랑, 심지어 고통과 슬픔이라는 감정들 까지도 다시는 경험할수 없는 특별한 것이고, 따라서 우리의 생명이라는건 말도 안되는 특권입니다.

다시, 의미

어떻게 살았고 그 삶의 결과가 어떻든 간에 삶은 과정입니다. 그 과정속에서 느끼는 모든 감정과 경험들은 의미가 있습니다. 벽지에 그린 어린 아이의 완성되지 않은 낙서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애틋한 감정을 자아냅니다. 시골에서 평생을 묶여 살던 노견이 남긴 허름한 목줄은 동물의 자유에 대한 많은 시사점을 우리에게 던져줍니다. 잉크를 다 쓰고 빈 껍데기만 남은 볼펜은 내가 얼마나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자부심을 느끼게 해줍니다. 나의 실패는 다시 나에게, 그리고 누군가에게 교훈이 되어 성공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됩니다..

삶이라는 단어자체가 살아 있는 현상, 사는 일을 뜻하듯이, 결과를 표현하는 단어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들과 경험들은 실존합니다. 내가 사라지면 느끼지 못할 귀중한 것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은 결과뿐만 아니라 과정 자체에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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