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란 무엇일까?
질문을 했다
10여년전에 20대였던 나는 친구와 함께 한 달 간 작은 교회를 다닌적이 있다. 내게 신앙심이 있어서 다녔다기 보다는 친구와 주말마다 만나는게 재밌었고, 다른 잡 생각 없이 예배에만 집중하는 하고 나면 명상 했을때 처럼 정신적 개운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교회의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는게 좋았다. 목사님은 나와 비슷한 또래였지만 나 보다 생각이 깊은 사람으로 기억한다.
나와 친구는 종종 목사님과 종교적인 대화 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대화도 나누었는데, 그날도 나는 예배를 마치고 교회 로비에서 행복이란게 무엇인지 목사님께 질문을 한 일이 있었다. 그런 질문을 한 이유중 하나는 괜히 말을 걸어보고 싶었던 것과 또 하나는 종교적인 만족감보다 삶의 지혜(?)를 얻고 싶었던게 컸던것 같다. 아니 어쩌면 지적 허영심 때문일수도 있다. 이유야 어찌 됐든간에 10년이나 지나서도 그 목사님과의 대화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서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걸 보면 교회에서 그런 질문을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내 질문에 목사님은 즉답은 하지 않으셨다. 그 대신에 “행복이 뭐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내게 다시 이렇게 반문 하셨다. 나는 식상하게 돈이 많으면 행복할 것이다 라고 답하고 싶지는 않아서 나름 골똘히 생각을 한 끝에 “항상 기쁘고 슬프지 않다면 행복한 것” 이라고 답했다. 내심 만족스러운 답변이라 생각했고 내 안에서도 스스로 행복에 대한 정의가 완성되고 견고해 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목사님의 말에 나는 머리가 새하얘지고 말았다.
나 혼자만 행복할 수 없는 이유
“그럼 내 주변에 아프고 불행한 사람이 있어도 난 행복할 할 수 있나요?” 라고 다시 내게 물으셨고 난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졌다. 난 그 짧은 순간에 상상을 해봤다. 만약 내 가족이 고통받고 불행한 상황에 놓여서 하루하루 눈물을 흘린다면 그럼에도 나만은 웃으며 행복할 수 있을까? 꼭 내 가족이 아니라 친구나 지인이 힘든 상황이란걸 알고서도 난 행복 하다며 웃고 다닐수 있을까?
행복이란 것은 한번에 정의 내리기 어렵고 스스로 오랜 시간을 생각 해볼 일이라는 말을 끝으로 우리의 대화는 유야무야 그렇게 끝이났다. 10년이나 흐른 지금, 누군가가 나에게 그래서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됐냐고 물어본다면 난 자신있게 여전히 모른다고 대답할 수 있다. 반대로 10년동안 내가 행복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서는 수 백 개가 쌓였다. 그것들을 이 포스팅에서 다룬다면 징징거리는 글이 될 것 같으니 그러지는 않겠다.
나만의 행복
여전히 행복이란게 무엇인지 명확히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가끔 행복에 대해서 생각 해봤다. 그리고 누군가에게 물어 보기도 하고, 인터넷을 돌아다니며 찾아보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레고 블록을 쌓듯이 만들어놓은 손때 묻고 꼬질꼬질한 행복에 대한 나만의 개똥철학은 생겼다.
이를테면, 난 한 여름 주말에 시원한 카페에서 이 글을 쓰고 있는것에 행복함을 느낀다. 그리고 밤이 되면 내가 좋아하는 자전거를 타러갈 생각에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그리고 어렵고 힘들지만 프로그램을 개발하는 것 또한 보람을 느끼고 재밌다. 난 누군가와 만나는것에는 작은 스트레스를 느끼지만 그럼에도 그 스트레스를 상쇄할 만큼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시간을 보내는 것에도 행복을 느낀다.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도,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것, 여행을 다닐때, 산책을 할 때도 행복하다. 나에겐 이런 작은 행복들이 있다.
이렇게도 행복한 순간은 내 삶의 도처에 깔려 있었다. 물론 이 행복들이 내 삶 내내 지속되면 좋겠지만 그렇게 되진 않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자전거도 하루 종일 타면 사타구니가 아프고 바람 때문에 눈이 건조해지듯이 모든 적당히 해야 좋다. 글쓰기도 하루종일 하면 머리가 지끈거리고 눈이 아프다. 난 행복이 이렇다고 생각하는데 이게 행복이 아니라면 정말 행복이란게 뭘까?
행복한 감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행복한 감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다 그때 그 순간 뿐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으로 짧았던 행복감을 경험한적이 있었다. 내가 20대 내내 갖고 싶었던 시티즌 이라는 브랜드의 시계가 있었다. 그 시계를 갖고 싶어서 인터넷에서 어떤 모델이 좋은지 사진도 찾아보고 가격도 알아 봤었다. 내가 갖고 싶었던 모델의 가격은 40만원 정도 였는데 당시에 내 알바비의 1/3을 차지 했을 정도로 나에겐 큰 금액 이였다. 그렇게 몇날 며칠을 고민을 하고 이런저런 사야하는 명분을 다 쌓고 나서야 큰 마음먹고 그 시계를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다. 주문을 할 때는 내 손이 덜덜덜 떨렸다. 지금껏 살면서 시계 따위에 그렇게 큰 돈을 써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망설였던 날 만큼 택배를 기다리는 시간도 길게 느껴졌다. 영겁 같은 기다림 끝에 마침내 내가 그토록 원하던 시계를 받아 볼 수 있었다.
부푼 마음으로 택배 포장을 뜯고 고급스럽게 쌓여있는 시계 보관 뚜껑을 열고서 영롱한 은색 손목 시계의 모습을 눈으로 확인했을때는 정말 행복했다. 그리고 손목줄을 조절하며 내 손목에 찼을때는 내가 마치 사회적으로 크게 성공한 사업가의 손 마냥 내 손이 참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설명서를 천천히 읽고서 사용법을 익혔다. 다 파악하는데 1시간이 지났을 무렵, 스위치를 톡! 하고 내린 것처럼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멋졌던 시계를 책장 어딘가에 올려 두고 난 컴퓨터 게임을 하러갔다. 요즘은 결혼식 같은 행사가 있을 때만 착용 하는데 손목이 뻐근하고 무겁기만 하다.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오래가는 행복감은?
오래도록 기대했고 거금을 들여 산 시계인데 행복감은 겨우 1시간 만에 끝났다는게 정말이지 허무했다. 그 때 이후로 물건을 사는것에 현타가 와서 지금까지도 열렬한 기대를 안고서 소비를 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택배를 받아봐도 그냥 별 감정이 들지도 않는다. “필요한 물건인데 이제야 왔군…” 하는 정도다. 이와 반대로 오래가는 행복감도 있었다. 가족에게 무언가 선물을 했는데 기뻐할때, 친구들과 여행을 다녀오고 나서 그 때의 기억을 곱씹어 볼때, 지인들과 함께 보드게임을 할 때, 원하는 목표를 성취 했을때 등등…목사님의 그 때 그 말씀과 같은 맥락으로 나는 누군가와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고, 그 기억이 고스란히 내 가슴에 뭉클하고 따듯하게 남아서 언젠가 그 추억을 떠올릴때면 행복함을 느낀다.
그래서 행복이란?
결국 행복이란것은 평소에 형상을 바라보는 내 태도에 달려 있는것 같다. 기본적으로 행복은 오래가지 않으며 특히나 쉽게 얻어진 것은 더더욱 오래가지 않는다. 또 내 주변에서 찾으려면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나쁜 감정에 사로잡히면 쉽게 찾아지지 않는다. 이 행복이라는 것도 결국엔 인간이 만들어낸 형체가 없는 개념이다. 어쩌면 그저 흘러가는 짧은 감정일수도 있다. 동물들도 행복이란 것을 느끼겠지만 인간처럼 복잡하고 깊게 사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강아지나 고양이를 보면 마냥 행복해 보일때가 있는데 그 이유가 그저 하루하루 순간의 행복을 순수하게 온 마음을 다해 느끼기 때문이지 않을까?
나도 10여년전 그 목사님이 내게 그러셨던것 처럼 이 글을 질문으로(다시 10년후의 나에게?) 끝내려 한다. 무엇이든 어떻게 해석 하느냐에 따라 그것에 대한 결론이 달라진다면 내가 느끼는 불행이나 행복이라는 감정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객관적인 사실인 것일까?